치료 기록

간이식 1 : 병이 공개되고 입원하기까지

소박이 2024. 6. 20.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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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간이식을 마치고 이제 다시 건강을 되찾은 동생을 생각하며... 기쁘게 지난 몇 달간의 투병이야기를 기록하려 합니다. 간경변(간경화와 혼용함)으로 투병하는 다른 환자들과 보호자들에게도 이 글이 약간이라도 참고가 되길 바라봅니다.

 

 

십 년 전쯤 간경변 진단을 받은 남동생은 그동안 바라크루드 0.5미리를 복용하며 정기적으로 지방의 대학병원에서 검진을 받고 있었다. 가족들이 걱정했지만 40대 초반이며 미혼인 남동생은 검사 결과 늘 이상 없다고 큰소리치며 술자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간경화는 초기에 머무르고 더 이상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설연휴 며칠 전쯤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몇 달 동안 약처방받는 게 귀찮아서 약을 안 먹었더니 황달이 왔다고, 이제 약 먹고 좋아지고 있으니 설날 자신의 얼굴을 보고 놀라지 말 것과 부모님께서 걱정하실 테니 괜히  이야기하지 말 것을 부탁하였다. 왜 약을 안 먹었냐고 꾸중을 하고 그때까진 그 녀석도 나도 문제가 그렇게 심각한 줄은 모르고 있었다.

 

 만나서 보니 본래 얼굴이 검은 편이라 피부는 그리 티가 나지 않는데 눈이 매우 노랗게 보였다. 동생 말로는 다시 약을 먹기 시작한 이후 엄청 좋아진 거라고 했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지속해서 더 좋아지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다음 날 동생은 갑자기 속도 안 좋고 피곤하다며 밥도 안 먹고 방에만 혼자 있겠다고 해서 또 그런가 보다 하고 다른 식구들과 외출하고 돌아왔는데 그때부터 상태가 뭔가 많이 이상해졌다. 갑자기 손에 힘을 주지 못해서 물컵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떨어뜨렸다. 걸을 때도 약간 휘청이는 느낌. 동생은 계속 괜찮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나는 계속 동생을 지켜보게 되었다. 밤이 되어 가족들 모두 잠들어 있는데 동생이 화장실 가느라 일어나는 게 느껴졌고. 혹시나 또 휘청이지 않을까 염려하며 동생에게 가봤는데 괜찮다고 한다. 그런데 괜찮다는 이야기를 한 번만 하는 게 아니고 똑같이 반복. 혹시나 하여 간단한 질문을 했는데 제대로 답을 하는 것 같더니만, 곧이어 이어진 다음 질문에도 앞 질문에 대한 대답을 반복하는 것이다. 설마.... 간성혼수가 온 것인가? 책과 인터넷에서 간성혼수라는 말을 많이 보긴 했지만 실제로 환자가 어떠한 상태에 이르게 되는지 공부를 하거나 본 적은 없어서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상한 건 확실했기에 새벽 5시쯤이었나 119에 전화를 걸었고 생전 처음 구급차를 타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한 것이었다. 

 

"가족분들이 간이식을 해주려고 준비 중이신 거죠?"

응급실 의사에게 이 말을 들으며 결국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아니, 그 순간에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잠시 현실 인식이 되지 않았지. 그리고 뭔가 다른 방법이 있을 거라는 희망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설연휴 마지막 날은 믿기지 않는 막냇동생의 건강상태로 모두들 혼란 속에 빠져버렸다. 

이제야 가족들 모두 동생의 상태가 간이식만이 유일한 치료인 말기 간경변 환자라는 걸 인지하게 되었다. 엄마는 우시고 자책하시고 80이 넘는 아빠는 자기가 이식을 해주겠다 하시고... 대혼란상태. 일단 입원하며 상태를 지켜보았는데 입원한 지 3일쯤 되었을 때 담당 교수가 연락이 왔다. 상태가 안 좋아졌으니 이제 간이식 할 수 있는 서울병원으로 옮겨야 할 것 같다는 것이다. 처음 상담할 때 담당교수님은 지금 당장 서울병원으로 옮기더라도 딱히 치료가 다르지 않으니 여기서 일단 지켜보자고 했었는데 며칠 사이에 상태가 더 나빠진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느라 그때 당시의 의무기록사본을 보니 놀랍고 끔찍했던 각종 수치들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 

급히 진료협력센터를 통해 서울아산병원 간이식센터 외래 예약을 잡고 올라오게 된다.

 

아픈 동생을 데리고 첫 외래를 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동생, 간병인, 언니, 오빠까지 넷이서 아침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서 오전 진료를 가는데 일단 비행기표 구하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닌 것이다. 설연휴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그런지 표 구하는 데도 고생하고 내려서 택시로 아산병원까지 가는데도 출근시간이라 엄청 막혀서... 예약 시간보다 늦게 도착하게 된다. 그러니 택시에 타고 있던 언니랑 오빠는 얼마나 속이 타 들어갔을지... 그나마 동생은 부축을 받으면 걸어서 움직일 수 있는 상태라 다행.

 

겨우 닿은 아산병원 외래진료를 통해 당일 입원 가능을 간절히 원했지만 결국 입원실이 나오지 않아서 일주일 뒤에 입원예약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불안정한 환자를 데리고 일주일간 서울에서 어찌 지내야 할지. 일단 당일 입원받아줄 대학병원이 있을까 해서 서울대병원 응급실로도 가보았지만 입구에서 커트 당한다. 의료파업이 막 시작될 시기라 당장 목숨이 위중한 환자는 받아주지 않는다고.... 지나고 보니 결국 서울대병원으로 안 가고 아산에 입원하게 된 거라 너무나 다행인 걸로!!

 

대부분의 요양병원들은 암환자나 외과 쪽 수술 환자들은 좋아하지만, 간경화 환자는 받아주질 않았다. 암수술을 진행한 환자들에게는 면역강화 목적으로 이런저런 비급여 약물을 처방하고, 수술환자들의 재활을 돕는 비급여 치료를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반면에 간경화 환자에게는 처방할 비싼 의약품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급히 몇 군데 요양병원에 연락해 보고 지인이 추천한 신규 요양병원에 자리가 있어서 그리로 일단 되었다. 양방을 겸한 한방요양병원으로 깨끗하고 괜찮았는데 아무래도 간경화 환자가 부담스러운 모양. 이틀쯤 뒤 일요일에 혈액 검사 결과가 좋지 않다며 퇴원하고 다른병원으로 가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예약된 입원날짜까지만 며칠 더 받아주길 원했지만 어쩔 수 없이 퇴원시키기로 하고... 이제 또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 어차피 휴일이라 근처 2차 병원이나 대학병원 응급실 밖에는 선택지가 없었고... 결국 아산병원 응급실로 가보기로 결정. 결과적으로 엄청 잘한 선택이었다. 응급실에서 관장 등 응급처치 하면서 당일 바로 입원가능한지 알아보았고 천만다행으로 병실에서 받아줘서 이제 아산병원에서의 입원생활이 시작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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